도문에서 훈춘으로, 크라스키노 접경도시들을 지나며 오랜 세월 이 도시들을 스쳐 갔을 사람들과 그들의 아픈 역사에 대한 상념은북중러 접경지역이 왜 슬프고 아픈 코스라고 했는지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달리는 버스 차창밖으로 길가 바로 언덕 위에 있는 도문구치소를 보았습니다. 그 구치소에서 북송되었다가 다시 탈출하였다는 자매는 말했습니다. 10년동안 한국 여권이 나와도 무서워서 중국에 오지 못했는데, 여러 사람들과 함께 중국에 오니 무섭지 않아서 좋다고요.  

우리는 국제버스를 타고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넘었습니다.  

차창밖으로 연해주의 광활한 자연을 보면서, 석양의 안중근 단지동맹비에서,  우수리스크의 이상설위허비 앞을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고려인 문화센터에서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탐방전에 책과 다큐로 연해주 역사를 읽고 또 보았지만, 현장에서 바로

눈앞에서 우리 민족의 고난스런 이주역사가 담긴 수많은 자료 사진들을 보고 또 설명을 들으니, 그 느낌과 아픔이 남달랐습니다.


나라 잃은 백성들이 남의 나라에서 지난한 삶을 살면서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던졌던 최재형선생님을 비롯한 이름모를 수많은 선조들의 치열했던 삶의 이야기는 퇴직 후 안주하며 살고 있는 저를 부끄러운 마음으로 돌아 보게 하였습니다.

 

우수리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오는 중에 고려인 강제이주 첫 출발지였던 라즈돌노예역에 내렸습니다.

고려인의 강제 이주 역사는 우리 민족의 고난사를 잘 대변해 줍니다.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극동지역에서 일본의 간첩활동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미명하에 소련극동지역(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약 172천명은 오랜 시간 일군 모든 것을 뒤에 두고 빈 손으로 하루아침에 죽음 같은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너무 조용하고 잘 정비된 철로를 보면서, 6.25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고향을 버리고 흥남부두에서 빈 손으로 어머니와 언니만 데리고 필사적으로 배를 탔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당시의 라즈돌노예역과 흥남부두 모두 아수라장이었겠지요.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톡에서 건설노동자로 외화벌이 나온 북한 주민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한 눈에 봐도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조금만 이야기해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나라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동일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전 세계, 그 어느 나라와 민족이 동일하겠지요.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죽고. . . . 힘들어도 감내하고.


 2018년 북중러 접경지역 탐방은 주님의 은혜와 선한 인도하심을 매 시간마다 느끼며 고민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나라와 내 민족에 대한 사랑을 다시 다짐하는 시간이었고, 이 땅의 하나됨과 내전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구촌 민족과 나라에 대하여 다양하게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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