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자작나무

조회 수 52081 추천 수 0 2009.09.27 08:09:48



With Love and Care



































































  한여름의 자작나무 아래서


  서울의 딸아이 집
  북한산 자락
  길음 뉴 타운에는
  세상에서 제일 이쁜
  소연이가 살고있습니다.
  소연이가 누구냐고요?
  아직 어린이집을 몇년째 오가는
  딸아이의 딸 미운 오리새끼가 한마리
  제 애미를 닮아서 고집이 불통이라
  오늘은 ㄷ자 놀이터에 강제로 끌려갔습니다.
  한여름 낮 무더위에 땀을 질질 흘리면서
  그네를 밀어주고 그네가 움지기는 동안
  "할아버지 노래해!" 명령이 떨어지면 어길수없는
  중노동이 시작됩니다.
  미끄럼타기 말타기 터널통과 놀이가 이어지고
  그리고는 덥다면서 바람이 모퉁이에서 돌아나오는
  지하차고 속으로 나를 끌고 간답니다.
  한정없는 시간 숨박꼭질을 하며
  제 아비가 퇴근하여 배트민튼 채와
  골프공과 퍼팅도구를 가져오고
  기차놀이 자동신호와 출발선을 만들고
  다리를 놓을때까지
  참으로 오랫동안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고개들어 위를 바라보니
  왠 자작나무가 하늘에 걸려있네요
  그게 자작나무라는 건
  써 붙여놓은 팻말이 있어서 였지요
  어릴땐 이런 비슷한 나무를 많이도 보았을 텐데
  껍질이 희다하여 백양나무라고 부르지 않았나 싶어요
  이제 그 이름이 자작나무라니
  시베리아도 아니고 유타의 팀파노거스도 아닌데
  서울의 아파트 단지 어린이 놀이터에서
  자작나무를 만나다니
  누가 쓴 [자작나무 연가]라는 시가 생각났읍니다.







  An Ode to White Birch



  자작나무 연가

  물에 젖은 채로도 불에 넣으면
  '자작자작'하며 타들어 간다는 자작나무.
  하얀 수피가 너무나 아름다워 옛날 우리
  조상들이 무척 귀하게 여겼지만,
  워낙 추운 곳에서만 자라는 탓에
  남한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다.

  (닥터지바고)의 눈부신 설경을
  기억하는 사람은 자작나무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눈이 시릴 만큼 하얗게 펼쳐진
  설원 위에 하얀 수피를 입고
  하늘로 곧게 뻗은 자작나무 숲을.

  예로부터 내려오는
  자작나무에 관한 전설 하나.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를 조심스럽게 벗겨
  수피 그 위에 때묻지 않은 연정의
  편지를 써서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단다.
  이루지 못한 사랑일수록
  자작나무로 만든 편지가 힘을 발휘한다나.


   ~ 우종영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중에서 ~






Hillside Birches / Emile A Ralph



        Birches    
        by Robert Frost  


        When I see birches bend to left and right
        Across the lines of straighter darker trees,
        I like to think some boy's been swinging them.
        But swinging doesn't bend them down to stay
        As ice-storms do.  Often you must have seen them
        Loaded with ice a sunny winter morning
        After a rain.  They click upon themselves
        As the breeze rises, and turn many-colored
        As the stir cracks and crazes their enamel.

        검푸른 나무 꿋꿋한 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늘어져 있는 걸 보면
        나는 어느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흔들어서는
        눈보라가 그렇게 하듯 나무들을 아주 휘어져 있게는 못한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쌓여 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 딸그락거리고
        그 얼음 에나멜이 갈라지고 금이 가면서
        오색 찬란하게 빛난다.

        Soon the sun's warmth makes them shed crystal shells
        Shattering and avalanching on the snow-crust--
        Such heaps of broken glass to sweep away
        You'd think the inner dome of heaven had fallen.
        They are dragged to the withered bracken by the load,
        And they seem not to break; though once they are bowed
        So low for long, they never right themselves:

        어느새 따뜻한 햇빛은 그것들을 녹여
        굳어진 눈 위에 수정 비늘처럼 쏟아져 내리게 한다.
        그 부서진 유리 더미를 쓸어 치운다면
        당신은 하늘의 천정이 허물어져 내렸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얼음 무게에 못 이겨 말라 붙은 고사리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한 번 휜 채 오래 있으면
        다시 꼿꼿이 서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You may see their trunks arching in the woods
        Years afterwards, trailing their leaves on the ground
        Like girls on hands and knees that throw their hair
        Before them over their heads to dry in the sun.
        But I was going to say when Truth broke in
        With all her matter-of-fact about the ice-storm
        I should prefer to have some boy bend them
        As he went out and in to fetch the cows--

        그리하여 세월이 지나면
        머리 감은 아가씨가 햇빛에 머리를 말리려고
        무릎 꿇고 엎드려 머리를 풀어 던지듯
        잎을 땅에 끌며 허리를 굽히고 있는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얼음 사태가 나무를 휘게 했다는 사실로
        나는 진실을 말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소를 데리러 나왔던 아이가
        나무들을 휘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Some boy too far from town to learn baseball,
        Whose only play was what he found himself,
        Summer or winter, and could play alone.
        One by one he subdued his father's trees
        By riding them down over and over again
        Until he took the stiffness out of them,
        And not one but hung limp, not one was left
        For him to conquer.

        시골 구석에 살기 때문에 야구도 못 배우고
        스스로 만들어낸 장난을 할 뿐이며
        여름이나 겨울이나 혼자 노는 어떤 소년.
        아버지가 키우는 나무들 하나씩 타고 오르며
        가지가 다 휠 때까지
        나무들이 모두 축 늘어질 때까지
        되풀이 오르내리며 정복하는 소년.

        He learned all there was
        To learn about not launching out too soon
        And so not carrying the tree away
        Clear to the ground.  He always kept his poise
        To the top branches, climbing carefully
        With the same pains you use to fill a cup
        Up to the brim, and even above the brim.
        Then he flung outward, feet first, with a swish,
        Kicking his way down through the air to the ground.

        그리하여 그는 나무에 성급히 기어오르지 않는 법을
        그래서 나무를 뿌리채 뽑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나무 꼭대기로 기어오를 자세를 취하고
        우리가 잔을 찰찰 넘치게 채울 때 그렇듯
        조심스럽게 기어오른다.
        그리고는 몸을 날려, 발이 먼저 닿도록 하면서,
        휙하고 바람을 가르며 땅으로 뛰어내린다.

        So was I once myself a swinger of birches.
        And so I dream of going back to be.
        It's when I'm weary of considerations,
        And life is too much like a pathless wood
        Where your face burns and tickles with the cobwebs
        Broken across it, and one eye is weeping
        From a twig's having lashed across it open.
        I'd like to get away from earth awhile
        And then come back to it and begin over.

        나도 한 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는 소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걱정이 많아지고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 같아서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
        그리고 작은 가지가 눈을 때려
        한 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진다.

        May no fate willfully misunderstand me
        And half grant what I wish and snatch me away
        Not to return.  Earth's the right place for love:
        I don't know where it's likely to go better.
        I'd like to go by climbing a birch tree,
        And climb black branches up a snow-white trunk
        Toward heaven, till the tree could bear no more,
        But dipped its top and set me down again.
        That would be good both going and coming back.
        One could do worse than be a swinger of birches.

        그렇다고 운명의 신이 고의로 오해하여
        내 소망을 반만 들어주면서 나를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게 아주 데려가 버리지는 않겠지.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설백(雪白)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자작나무 흔드는 이보다 훨씬 못하게 살 수도 있으니까.



        어느 분이 이렇게 요약하여 해설을 붙였군요



        Birches / 자작나무


        Life is too much like a pathless wood
        인생은 꼭 길 없는 숲 같아서

        Where your face burns
        거미줄에 얼굴이 스쳐

        and tickles with the cobwebs
        간지럽고 따갑고,

        Broken across it, and once eye is weeping
        한 눈은 가지에 부딪혀

        From a twig’s having lashed it open,
        눈물이 나기도 한다.

        I’d like to get away from earth a while
        그러면 잠시 지상을 떠났다가

        And then come back to it and begin over
        돌아와 다시 새 출발을 하고 싶다.

        Earth’s the right place for love:
        세상은 사랑하기 딱 좋은 곳

        I don’t know where it’s likely to go better.(부분)
        여기보다 좋은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 <36>오늘은 나머지 삶의 첫날


        장영희 서강대교수·영문학


        인생은 길 없는 숲이고, 길을 찾아 숲 속을 헤매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입니다.
        나무를 헤치며 가다 보면 때로는 얼굴에 거미줄이 걸리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눈이 찔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에 떠났다
        돌아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시 중간에 시인은 말합니다.
        " 운명이 내 말을 일부러 오해하여/ 내 소원의 반만 들어주어
          날 아주 데려가 돌아오지 못하게 하지 않기를..."
        잠시 떠나고 싶지만 영원히 떠나고 싶지는 않은 곳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어차피 운명은 믿을 만한 게 못 되고 인생은 두 번 살 수 없는 것,
        오늘이 나머지 내 인생의 첫날이라는 감격과 열정으로 사는 수밖에요.











최정식

2009.09.27 20:32:30

감격과 열정으로 늘 좋은 글과 사진 보여 주시니 언제나 감사입니다. 저는 생각이 짧고 복잡한게 싫어서인지 언제나 놀랍니다. 주께서 때마다 일마다 평강 주시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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