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고 마음이 답답해서 집을 나섰습니다. 이럴 땐 예배당이 최고지요.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는 걸 알지만 예배당을 보기만해도 좋을 듯 같아서 발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가는 길에는 벚꽃이 벌써 봉오리를 맺어서 며칠 내로 활짝 필 기세였습니다. 번식기임을 알리는 온갖 새소리도 고왔습니다.  예배당은 아침 햇살 아래 고요하고 아름답게 우뚝 서 있었습니다. 우리는 없지만 마당에는 새싹이 움트고 꽃들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코로나로 예배당에서의 모든 모임이 중지된 초반기에는 신천지 욕을 하면서 지냈던것 같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이 기회에 하나님께서 신천지를 손보시는구나, 잘됐다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신천지보다 나을까,  우리는 과연 잘해왔는가. 우리의 예배를 중단시킨 것이 인간의 통제 안에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디서 온 것인지 제 입장에서는 명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중단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중단시키시다니.

  악을 그치지 않고 선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드리는 귀한 헌물과 제사를 역겹다고 표현하신 성경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믿음과 긍휼은 버렸다고 책망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있었습니다.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는데 예배 드리고 헌금하면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밥먹듯이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이번 코로나 사태는 우리를 향한 강력한 경고의 메세지일 수 있다는 충격이 다가왔습니다.

  이 사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현대의 웬만한 국가의 평범한 사람들은 옛날 왕보다 더 많은 물자를 사용해서 누린다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혹은 안다 하여도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향한 갈망을 통제하지도 않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 이동조차 제한된 이탈리아의 유명 관광지 베네치아에는 평소 한 해 관광객이 천만 명을 훌쩍 넘어갑니다. 곤돌라가 오고가는 수로의 물이 항상 탁했는데 이번에 관광객이 사라지고 한 달도 되지않아 그 물이 맑아지고 물고기라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ㅡ물론 이것이 수질이 근본적으로 좋아진 것은 아니라는 전문가의 지적도 함께 달려있었습니다.ㅡ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가라앉을 것을 뻔히 알면서 대책없는 낙관을 가지고 항해하고 있는 것이 현재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인류의 문명이라는 끊임없는 경고의 메시지가 들리는데도 우리는 오늘을 살기에만 바쁩니다. 망가져가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인간에게 학대 당하는 지구에게 하나님께서 숨 쉴 틈을 주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요?   티비에서조차도 구제를 위한 방송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데 그것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를 고민도 하지않은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예배를 잘드리고 있고 헌금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것으로 모든 것을 퉁치려는 악함이 내게 자리잡은 것은 아닌지, 말씀을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패막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손가락질 받는 한국 교회의 어떤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교회는 그렇지않으니까라고 선을 긋고 우리는 잘하고 있다는 오만에서 그친 것은 아닌지 온갖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두렵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왔기에 두렵고, 마음 속에 떠오른 이 생각이 두렵고, 이 경고를 또 무시하고 살아갈 확률이 너무나 높기에 두렵습니다. 이 두려움이 두려움으로 끝나지않게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바꾸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느낀 이 두려움을 함께 느끼신 분이 있으면 같이 기도하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교회 산책은 답답함과 그리움으로 시작해서 두려움으로 끝을 맺었습니다.